디모데후서 4:6-8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번 주일 저의 설교 메시지는 ‘참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을 주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참음을 강조한 사도는 요한 뿐이 아닙니다. 바울도 “(롬8: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고, 야고보 사도도 “(약5:10)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도들이 ‘참음’, ‘인내’를 강조했고, 예수님도 “(눅21: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니 ‘인내’를 설교할 수 밖에 없지만, 이런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들은 쉽게 “그럼 이 세상에서는 신자들이 너무도 소망을 갖기 어려운 것 아닌가”하는 의심과 불안이 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될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어 보이니 걱정입니다.
물론 신실한 신자가 이 세상에서 아주 잘 될 수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불치의 질병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할 수도 있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신자 아닌 사람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고, 불치의 질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실제 우리 주변에 왕왕 일어납니다.
반면에 신자의 기도가 전혀 응답되는 것 같지 않고 온갖 불행이 겹쳐오는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도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인생의 봄날은 가고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굶고, 매맞고, 갇히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래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은혜가 족하다고!!??” “밥 먹듯 굶고, 매 맞고, 핍박당하는 내게?” 나라면 그렇게 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응답을 듣자마자 바로 인정했습니다. 곧바로 크게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이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했습니다(고후12:10). 주의 고난과 나라와 참음에 참여하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안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오는 기쁨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기쁨이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과 같은 삶을 살았는데, 죽음을 바라보는 순간까지 이 세상에서의 편안함이나 부유함 같은 복은 누려볼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저 관념적으로만 보이는, 또는 너무 영적이어서 현실 세계와는 저 멀리 동떨어져 보이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이 그에게는 실재하는 소망의 근거요 기쁨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예비된 ‘의의 면류관’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하고, 기쁨이 용솟음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그 기쁨의 실제성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된 것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이미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이 주는 그 소망과 기쁨을 실제/실재하는 기쁨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도들이 매 맞고 옥에 갇혀 기쁨으로 찬송했던 것은 그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쁨이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의 기쁨을 실제로, 그들의 육체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한다면, 우리도 그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해하지만 실재하는 그 기쁨을 우리가 다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향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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